시원 섭섭한 ‘Uber’
갑갑하면 동내 한 바퀴 돌고 아니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나의 일상생활이 된 지도 십 년이 되어간다.
특별한 생각이 아니라 그저 몸과 마음이 조용해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리의 생각은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휩싸여서 현재를 즐기기가 쉽지 않다.
지금이라도 조용히 하는 습관을 하여 현재와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어보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해야만 하는 의무 사항이 하나 있는데 주말에 아들 녀석을 바트나 버스 정류장에서 픽업해 오는 일이다.
주로 금요일에 와서 일요일에 가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은 내가 준비된 ‘우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는 녀석이 진짜배기 우버를 이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고 잘 됐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성인이 되고선 가뜩이나 부자지간에 대화가 줄었는데 차 안에서의 짧은 대화도 실종된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시간 맞추어 나가야 하는 얽매임이 싫었고 귀찮아 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지나고 보면 그때가 좋은 것을 왜 나는 지나서야 알게 되는지 모르겠다.
자동차보다는 우마차(牛馬車) 위에 걸터앉아 가는 것을 친숙하게 보아온 세대로서
지금의 자동차 문화는 어디까지 발전하려는지 자못 궁금하다. 자율주행 차량의 시대가 머지않았다.
‘피치버그’주에서는 이미 운전자 없이 손님을 태우고 시범 운행 중이다.
요즈음에는 옐로 택시 보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으며 몇 년 안에 운전대를 잡지 않는 자동차를 만든다고
테슬라, 구글, 지엠, 애플 등은 각 회사의 사운을 걸고 싸우고 있다.
좋은 세상이기는 한데 내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주눅이 들어간다.
나는 걷고, 전차를 타고, 기다리다 버스 타던 옛 시절이 그리워진다.
어떤 정치인에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있는데 참 좋은 표어라고 생각한다.
느슨하고 따듯한 저녁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보금자리로 돌아가자는 뜻인데 그것은 누구나 소망하는 저녁 시간이 아니던가.
한국 속담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푼수는 분수(分數)대로 살아야 하는가 보다.
하루가 다른 세상이 요로코롬 심들어서 어디 쓰겄는가?
오늘 아침에 녀석은 스마트폰을 꾹꾹 누르니 쏜살같이 우버가 대령한 모양이다.
창문 '브라인더'에 집게손가락을 꾹 질러 살펴보니 우리 총각 모시러 온 택시이다.
우버가 나의 소일거리를 가져간다 해도 나의 수입에는 지장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Uber’야! 안전제일이다. 잘 모시랑게!!
저녁에 회사에서 일을 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벌써 오래전에 잃어버린 시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본뜻대로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시간들에 대해서 어찌 할 수 없는 무능함을 느끼고도 있네요.
어쩌다가 컴 앞에 차분하게 않아서 글을 읽고 또 쓰다가도 등 뒤에 내려 꼬치는 시선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든 개인들은 전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고
그리고 그 가치관들은 결코 같아질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의지를 꺽으면서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하는...
뭐.... 이런 현상을 배우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지도 모르니까요.
무심님의 글을 읽는것이 잠시나마 휴식이 된지 오래 되었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