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단상
비가 내리면 누구나 집을 나서기 전에 챙겨야 할 것이 우산뿐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부터 걱정해야 하는 직업으로부터,
오늘 하루에 내릴 비의 종류, 입을 옷, 먹는 것까지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서양에서는 비를 주제로 하는 영화, 음악까지도 다양한 느낌을 주는 비는 때로는 슬픔을 묘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추억을 만들기에 좋은 소재를 제공하기도 한다.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었던 60년대의 유행했던 노래가 떠오른다.
1960년대 후반에 최고 노래였던 4인조 남성중창단 '불루벨즈'(김희창 작사 작곡)의 "열두 냥짜리 인생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막걸리 한잔하고픈 시대를 공유(共有)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처음 그들이 노래 불렀을 때는 놀랍게도 무반주로 불렸다고 한다.
그 후에는 봉봉사중창단, 쟈니 부라더스, 삼태기 등 여러 가수에 의해 불렸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건설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63년)를 작가가 알고 있던 구전 가요를 다듬어 라디오 주제가로 썼다고 한다.
50대 이상이면 기억나는 이 노래는 듣고 있기만 해도 육체 노동자들의 애환이 깃든 막걸릿집의 분위기가 눈에 선하다.
‘열두 냥짜리 인생’
사랑이 깊으면 얼마나 깊어/ 여섯 자 이 내 몸이 헤어나지 못하나/ 하루의 품삯은 열두 냥인데/ 우리 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후렴)엥헤이 엥헤야 엥헤이 엥헤야/ 네가 좋으면 내가 싫고 내가 좋으면 네가 싫고/ 너 좋고 나 좋으면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 엥헤야’(1절)
‘사랑이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막걸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후렴)’(2절)
‘술잔에 넘는 정은 재어나 보지/ 우리 님 치마폭은 재일 길이 없어/ 천금을 주고도 못 하는 이 정/ 열두 냥 내놓고서 졸라를 댄다/(후렴)’ (3절)
‘우리가 놀면은 놀고 싶어 노나/ 비 쏟아지는 날이 공치는 날이다/ 비 오는 날이면 님 보러 가고/ 달 밝은 밤이면 별 따러 간다/(후렴)’(4절)
이 노래는 막노동판의 생활에서의 고단함, 사랑, 그리고 행복을 간절히 구하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노랫말에
안타까움이 듬뿍 묻어 있다.
그때 당시의 학교 앞 대폿집에 들어서면 벽에는 정돈되지 않은 색바랜 메뉴 종이가 제멋대로 비스듬히 붙어 있다.
빈대떡, 파전, 녹두전, 순댓국, 동태찌개… 쭈그러진 주전자와 양재기에 따라 먹던 막걸리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테이블이라야 가운데는 연탄이 피어오르는 둥그런 철판에 둘러앉아 친구 혹은 첫사랑과 함께했던 시간들....
단골 아주머니는 내게 외상을 곧잘 주기도 하였다. 그것을 눈치챈 녀석들은 넉넉히 마시고 뒤처리는 나를 앞세우곤 하였다.
그래도 그 시절이 좋은 것은 지나간 날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가 오는 날의 이미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누어진다.
어떤 이에게는 손꼽아 기다린 오랜만의 외출을 망치는 불쾌하고 짜증 나는 날씨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외로우면서도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비가 오는 날의 필수품은 당연히 우산이어서 쇠꼬챙이 같은 뿌리를 들며 갈 때는 조심하여야 한다.
종종 지나치는 푸른 비닐우산을 만나게도 된다.
의도하지 않은 '갑과 을'의 관계는 우산에도 존재하는가 보다.
대나무 가락 몇 개로 엉성하게 받치고 있는 을의 우산을 찢게라도 된다면 나는 ‘갑’이 되고 그는 ‘을’이 된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나의 쇠 뿌리가 푸른 살을 찢어내는 아픔이 되어 그를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꼬챙이 우산을 들지 않고 비닐우산으로 함께 걸어가겠다.
갑이지만 을이 되는 사람이 되고싶지만 저는 을에서 벗서나지 못해서 발버둥칩니다. 이제 그발버둥을 그만치고 겸허하게 본인의 모습에 만족하며 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