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년 만의 목소리"
뚜~~ 하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베게 밑에 '폰'을 찾았다.
쓸데없는 번호와 함께 엊그제 동창회를 통해서 알게 된 '명수'의 ㅋㅌ 도 세 시간 전에 와 있었다.
시간을 보니 다섯시가 되어간다. 전화를 걸까 하다가 시차가 있어 혹시나 친구의 잠을 방해하기 싫어서 아침에 하기로 하였다.
다시 잠을 청 해보지만,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 친구는 이민 와 '캐나다'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엊그제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으로 퇴색되어가던 먼 기억 속의 '명수'의 모습과 반세기 전의 학창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 어쩐지 생경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저 깊은 낭떠러지로부터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추억을 자장가 삼아 어렵게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시계를 보니 여덟 점을 치러간다. 커피 한 잔 마시고 꾹꾹 명수의 번호를 눌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명수야' 한 다음에 나 '철수(?)' 야하니까" 잠시 후,
"어~~ 반갑다 철수야!
오십 년 만의 '명수'의 목소리에는 그동안의 세월이 짙게 묻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내부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회한(悔恨 )의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세시간 전에 ㅋㅌ 을 받았는데 혹시 시차가 있을 것 같아 이제야 걸었네.”
거기는 몇 시니?" "응 11시" 생각보다는 3시간만 다를 뿐이다.
"아니 언제 왔어! 정말 반갑네!"응 85년도에" "아 그래 난 76년도에 왔어."
남의 사정 물어보았으면 내 사정도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기에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거기는 어디야" "캐나다" "하하 이 사람아! 어느 도시냐고?"
뭐라고 하는데 생소한 이름이니 가늠하기가 어렵다.
얼른 알아차린 명수는 "응 미국 '버펄로'와 '나이아가라' 있는 위쪽에 도시야"
"대충 알겠네!"
나는 아무리 길치라도 '나이아가라' 쪽은 알기에 동부 쪽이구나 하고 잘 아는 척했다.
난 '캘리포니아 샌호세'에 살아" "어 내 조카가 그쪽에 있는데"
"혹시 이쪽으로 올 기회가 있으면 잊지 말고 전화 주시게”
"우선 서로가 사는 동네는 알았으니 다음에는 '호구조사(戶口調査)’에 들어갔다.
"그동안에 어떻게 지냈니?""응 너도 알잖아. 이민생활이란 것을..."
그러고 보니 나의 싱거운 물음이었다. 아마도 너무 반가움에 채 정리되지 않은 인사치레의 평범한 말이고 부담 없는 말인듯하다.
"일은 안 하겠지?" "응 3년 전에 그만두었어." "나는 십 년 가까이 되어가"
명수에게는 사십 초반의 외아들과 손주와 손녀가 있는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나에게는 두 자녀가 있지만, 결혼을 아직 안 해서 손자가 있는 친구에게는 부러움을 느낀다.
명수는 아버님을 모시고 생활한다 했으며 연세가 92세이시다.
아버님!
“지면으로 큰절을 올립니다.”
” 친구는 내년 봄에 아들이 사업상 한국에 가는 즈음에 고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언제 갔다 왔느냐고 물었는데 이년 전이라고 하니 자기는 자주 간다고도 했다.
나도 형편이 되면 내년에 같이 나가자는 약속을 하며 그렇게 오십 년 만의 목소리는 ‘쉼표’를 가지며 다음을 기약했다.
명수!
새해에도 복 많이 받고 건강하시게!
글을 읽이면서 저도 3년전에 초딩 동창들 찾았을때가 생각나면서 그때 그 설레움, 그리운 감정이 생기네요.
친구랑 참 신기한 관계같아요. 30년을 연락없이 살았어도 정답고 어색함없이 야.. 너 .. 누구누구야 하며 이름을 부를수있는 사이..학교 다녔을때 그시간을 같이 공감할수있는 사이...
참 소중한 인연 같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