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보고픈 강아지
지금은 세상을 떠난 강아지이지만 가끔은 보고픈 녀석으로 마음을 적신다.
그저 차로 삼십 여분 가량 떨어져 있는 친근하게 대해주시는 형님분 집의 강아지이다.
내가 보아온 지 대략 십오 년은 되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하얀 털이 뒤덮인 ‘아가’였는데 벌써 사람 수명으로 따지자면 80은 넘어가는 나의 형님이 되어있었다.
그 집에 가게 되는 경우는 아무래도 연말에야 두 형님(?) 뵈러 가는 날이 자주 있게 된다.
몇 달 만에 가도 마주치자마자 좋다고 '컹컹'대며 흔들어 대는 꼬리에 그 날은 내게는 최고의 기분 좋은 날이다.
정확한 품종은 기억나지 않지만,
형님이 대여섯 시간 운전하여 수소문하여 사온 강아지니 흔히 이야기하는 뼈대 있는 집안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요즈음은 눈과 총명하던 모습도 덜하고 약간의 치매끼가 있다니 안쓰러울 뿐이다.
그러고 보니 하얀 털도 좀 푸석하고 ‘곰탱이’ 움직임에서 세월이 묻어난다.
그 집 가는 중에 주유소에 들러서 beef jerky나 혹은 과자를 사서 주는 것을 요녀석이 귀신같이 기억해서 일지도 모른다.
흔히 세상에서 사람과 제일 소통이 잘 되는 동물은 '개'라고 하는데 그 중에도 이렇게 환영해 주는 녀석의 행동에는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간다.
소파에 앉아서 두 분과 이야기하는 중에도 쉴새 없이 내 앞을 뛰어다니며 재롱을 떤다.
나는 심심치 않게 ‘져키’를 잘라 입에 대어주니 잘도 받아먹는다.
한참 후에 우리는 부엌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후에 발에 간지러움을 느낀다.
탁자 밑을 보니 요 녀석이 두 앞발로 내 발목을 감싸 안으며 재롱을 떨고 있다.
"아이고 좋아요!" 신호를 계속 보내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져키'를 뜯어 주는데 ...
"여보게! 설사 하니 그만 주게" "예" 하고 말은 했지만,
강아지에게 그런 환대를 받는 상황이 생전 처음이라 내키지는 않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늘 집을 나설 때는 내 신발 한 짝을 물고 도망가는 녀석과의 '실랑이'에 더욱더 보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아련하다.
그렇게 우리는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다.
얼마 전에 형님 집에 전화를 드렸을 때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형님 부부의 마음고생은 이십 년 동안의 부대낌의 세월만큼이나 가슴이 먹먹하셨으리라 짐작이 된다.
나 역시 그저 일 년에 대, 여섯 번 보아 왔지만, 그 녀석의 모습이 눈 앞을 가린다. 장난치며 함께했던 시간이 엊그제 같았는데...
왜 우리는 이별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태어나면 죽음이 기다린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늘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자도 가끔 열어보며 내 친구로 만들 수가 있다면 좋겠다.
해피야!
다시 만날 때까지 편한 곳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해라!
사람도 나이를 먹고 오래살면 몸도 정신도 희미해지고 벽에 똥칠 할때까지 산다고 하지요
울 캔디도 1년넘게 귀저귀를 차고 감기가 걸리면 잘 낫지도 않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여기저기 고장이 나는걸 느낄수가 있지요
종양수술도 하고 관절도 안좋고 코피도 나고 생긴것만 틀리지 인간이 느끼는건 다 하던데요,
아직도 못잊어서 약간 돌은 사람처럼 강아지 인형을 목에 걸고 껴안고 자고 향상 캔디의 감촉을 잊지않으려고 한답니다.
차키 잡는소리에 어디선가 튀어나올것 같고 ,밖에 나가있으면 집에 빨리 가야지 캔디 혼자있는데, 착각도 하고,
요즘은 너무 재미도 없고 맘이 아직도 허전하고 보고 싶답니다.
살아 있을때 후회없이 마니마니 사랑하고 놀아주고 더 그럴껄 ~~그래도 떠나고 나면 항상 아쉬움은 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