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없는 사람
6년 넘게 산행을 하면서 실없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내 역시 실없는 사람으로 비취어진 적이 꽤 있을 듯싶다.
나는 원래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라 해도 말이 적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말하는 경험이 적었으니 세상 살기에 두뇌 회전이 빠르지 않은 편이다.
살다 보면 타인에게 한 의도는 호의적으로 베푼 약속이지만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 상심이 커지기도 한다.
지구 상의 75억가량 되는 사람 중에 대한민국이라는 갑옷을 두르고 이곳에 와서 여러분과 함께한 산행의 세월을 돌아보니 늘 마음에 걸리는 한 분이 남아있다.
정확히 기억하려면 남의 집에 들어가 곳간을 뒤져야 하니... 내 기억으로는 대충 삼, 사 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의 산악회는 분위기 좋았고 무지몽매(無知蒙昧)한 회원은 없었기에 매주 토요일이면 거의 산행을 하였다.
어느 토요일에는 닉네임이 '모모'라는 여성회원의 집 근처로 산행을하고 뒤풀이는 그 집에서 하기로 하였다.
때는 한여름이고 집이 있는 곳은 '리브모아'쪽으로 기억이 되는데 햇빛 쏟아지는 벌판길과 민둥산을 돌아오는 산행길에 머리와 '맴'이 뱅뱅 돌 지경이었다.
그렇게 힘든 산행을 마치고 모모님 집으로 모였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이층집에는 수영장이 있어서 많은 분 이 '수영 산행'으로 즐거운시간이었다.
그날은 화창한 날씨와 함께 특별히 준비한 '모모 월남 국수'가 시중에서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맛이었다.
밖에서는 지글지글 익어가는 바비큐와 함께 한여름의 장면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얼마후에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잠이 스르르 몰려온다.
수영을 할 줄 모르기에 집안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주인장을 만나 통성명하던 중에 집 구경하려고 반지하로 된 곳으로 내려갔다.
우리 둘은 잘 꾸며진 곳에 Bar에나 어울릴 듯한 의자에 걸터앉아 이야기하였다.
벽을 쳐다보니 그곳에 어울리는 장식물을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장사를 그만둘 때 집에 두었던 것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분은 기대와 흡족한 모습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그 날은 여름날의 산행을 특이하고도 기분 좋게 마치고 돌아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모님은 발의 부상으로 일 년 가까이 산행을 할 수가 없었다.
회복 후에는 어느 산악회에 간혹 다닌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만날 수가 없다. 모든 게 추억이 되듯이...
지나고 보니 그날의 산행과 뒤풀이는 늘 잔잔히 마음속에 스며있다.
그 많은 회원을 웃음과 넉넉한 마음으로 베풀어 주신 모모님이 어디서 생활하던지 늘 건강하고 평안한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한편으로는 바깥 분과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하다.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혹시 어느 분으로부터 전화번호를 받게 되어 그분과의 '약속의 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이다.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작년 9월달에 모모님이 참석한 캠핑 모임에서 "모모 월남 국수"가
너무들 좋다는 평가에, 모모님이 기쁜 마음으로 그다음달의 산행후에 자기집에서
앵콜 공연 (모모 월남 국수)을 하시기로 적극적으로 제안을 하였던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