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라식수술을 하고 평생을 쓰고 살던 안경을 벗은 감동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 처음보다는 덜 잘 보이고 포샵한것처럼 사람들이 뽀샤시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볼때 밝은 빛에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껴야 하고요.
작년말에 라식수술 다시하려고 안과에 갔다가 백내장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당장 수술하자고 하면서 눈에 집어 넣을 렌즈를 얼마짜리로 할거냐고 다짜고짜 물어보시는 의사가 무서워서 얼른 나왔습니다. 아마도 지난 2년간 심해진 당뇨병으로 눈에도 영향이 온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뇌가 적응을 했는지 요즘은 교회에서 눈부심도 덜하고 뿌연것도 덜 해진것 같은데 그래도 백내장 수술시기를 정해야 겠다는 생각에 안과의사를 소개 받았습니다. 제가 가장 우선시 한 것은 친절함입니다. 의사도 그렇지만 스탭분들의 친절함에 저는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드디어 소개를 받은 안과에 왔습니다. 예약은 오후 1시반. 15분전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잠겨 있습니다. 잘 못 열었나 해서 계속 열려고 했지만 안 됩니다. 잠시후에 누가 나오길래 얼른 들어 가려고 보니 안이 어둡습니다. 나오는 사람이 말하기를 안에서 점심 먹고 있다고 곧 문을 연다고 합니다. 이상한 병원이네 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드디어 문을 열어 줍니다.
어두웠던 실내는 금새 밝아지고 어느새 예약손님들이 잔뜩 들어 왔습니다. 여기는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의사는 연세가 있는 여성분인데 일하시는 분들은 다들 청년들이었어요. 여기를 소개 받을때 제일 친절한 곳으로 해 달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의사도 친절하고 스탭들도 다 친절합니다. 방긋방긋 웃지는 않지만 얼굴에 짜증이 없습니다. 오신 환자분들도 여유가 있고 처음보는 옆사람들과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먼저 얘기하며 자연스러운 대화들이 이어집니다.
자세히 쓰면 책 한 권도 쓰겠어요. 일단 얘기를 마무리 해 봅니다.
의사도 생글생글 스탭들도 여유롭고 무엇보다 친절합니다. 놀라운 일은 의사가 제 눈을 보고 나더니 Retina 는 건강하고 백내장도 아주 조금 있다고 하면서 당뇨병만 조금 더 좋아지면 수술 안해도 된다고 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 전에 병원에서는 바로 눈알 빼자고 했는데 여기는 수술 안해도 된다니!! 그리고 백내장이 줄거나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그러면서 제 눈에 살짝있는 백내장을 보여 주겠다면서 자기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잘 안 되서 제가 초점이 제일 잘 맞은 ultra wide angle 렌즈를 선택하면 2cm 까지 근접해서 찍을 수 있다 알려 주니 좋아합니다. 제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몇장 보여주니 자기도 배우고 싶다고 해서 class 가 있다고 알려 줬어요. 옆에 있던 스탭분도 관심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의사께서 자기가 직접 쓴 “당뇨병 환자를 위한 50가지 식단” 이란 영어로 쓰여진 책도 주길래 제가 한글로 번역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저기 환자들이 검사를 받고 있는데 하하호호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대기실의 환자들도 지루해 하지 않고 옆사람들과 잡담하며 노는듯 하고요. 이런 병원은 처음 봅니다. 제가 그렇다고 말하니 스탭분들도 좋으신지 ㅎㅎㅎ 웃으시네요.
이곳은 안과이지만 사람이 살아나는 곳 같습니다. 불필요한 수술은 하지 않고 함꼐 놀면서 진료를 하는 어른들 놀이터 같아요. 의사분이 저를 보고 음식과 운동도 중요하지만 살짝 스트레스가 있어 보인다며 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산책도 하고 눈도 쉬라고 하시네요. 3개월뒤에 다시 올 예약을 하는데 내일 다시 오고 싶습니다. 다음에 올때는 제가 쓴 책도 좀 가지고 와야 겠어요. 오늘 주신 책도 한글로 번역해 오고요. 덕분에 또 즐거운 할 일이 생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