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각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성찰(省察)할 시간을 갖게 됨으로써 상대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잠깐의 격한 감정으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종종 뒤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손님의 이야기이다. 먼 옛날이 되어버린 구멍가게 때의 일이다.
주차시설이 빈약하여 고충(苦衷)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바쁜 길 코너에 있는 가게는 네 대의 주차시설이 전부인 곳이니 바깥을 늘 주시하게 된다.
어느 비가 오는 초겨울 밤이다.
가랑비는 내리고 장사는 안되고 닫는 시간은 지켜야 하니 유리창 넘어 간혹 오가는 차들의 불빛만 깜깜한 밤의 스산함을 더해 준다.
잠깐 사이에 어느 녀석이 주차하고 사라진다. 얼른 나가서 보니 쏜살같이 길 건너 '이탈리안 스파게리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괜히 화가 치민다. 어느 놈이 장사도 안되는데 ...
그때는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은 쪼금도 없고, 잠시 대문을 잠그고 길 건너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뿔싸!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단골손님이었다. '투고'를 시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무슨 콩깍지가 씌워졌는지...
'미안하지만 차 옮겨!' 그 사람은 대꾸도 안 하고 요지부동인데 나는 화를 내며 차 빼란 말을 여러 번 하고 돌아왔다.
가게 비운 시간은 십분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손님이 있었을 수도 있고 없었을 수도 있겠다.
다시 오픈하고 얼마후 그 친구는 주문한 보따리를 갖고 출발했다.
낮이었다면 차의 색깔과 모양으로 그의 차를 분별할 수 있었을 텐데… 삼십 분 동안의 경솔함으로 단골손님을 잃게 되니 씁쓸한 기분이다.
그날 밤은 집에 와서 반주로 마시던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 이야기를 집사람에게 해서 무엇하랴!
혼자 속상한 것을 둘이서 하는 것도 어리석음이니 단지 "내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주정(酒酊) 아닌 주정을 하고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다. 오직 이날만큼은 늦게 열고 오후 6시에 닫아서 가족회의와 하느님께 기도 드리며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다.
어제 일을 잊어버리려고 '덤바톤'다리 건너오는 길에 애써 휘파람도 불어 본다. 오픈 하자마자 눈에 익은 차로 첫 손님이 들어온다.
아! 분명 그 친구다. 어젯밤에 차 빼! 라고 소리 질렀던 그 왼수(?)가 몇 시간 만에 비싼 ‘보드카’ 한 병을 카운터에 놓는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멋쩍은 일은 없었다. 얼른 표정 관리하며 굿 모닝! 이다. 그 친구도 굿모닝!
떠나면서 서로가 '해브나이스 데이'와 ‘유투~’를 외친다.
보통사람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내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과연 내가 그 사람이라면 이 가게를 다시 찾을 수가 있겠는가?
아마도 나의 '빅마우스'로 인하여 이 가게 손님 떨어뜨리기에 일조(一助)를 하였겠지 싶다.
나는 이민 생활에 자식 둘과 함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고 잠시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이고
그 친구는 한 사람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고마운 분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따듯한 손으로 잡아주는 사람이 있기에 사회가 발전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많이 남지 않은 나의 사회생활도 그와 같이 사랑의 콩깍지가 씌어진 생활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날 밤도 한 잔과 함께 “위하여!”를 외치며 어제의 일을 집사람에게 뒤늦게 이야기하였다. ㅎㅎ
1970년대 후반 작가 엘리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ROOTS)가 영화로 만들어져 미국 역사상 최고로 시청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18세기 노예상인들에 팔려간 아프리카의 젊은 전사'쿤타 킨테'와 그의 후손들의 가혹한 생존 이야기이며 그 후손들의 자유 투쟁사이다.
또한, 작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가족사이며 노예제도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다. 그는 그 소설로 인해 '플리처'상을 받았다.
나는 가끔 이곳 생활이 어떠냐고 물어 오면 한국에서 온 현대판 '쿤타 퀸테'의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젊은 날에 이곳에 와서 창살 없는 감옥에 이른 아침 출근해서 늦은 밤에 돌아오는 생활을 감히 '쿤타퀸테'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에서 자유로운지 십 년이 되어가고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는 생활 속에서 편히 지내고 있다.
그에 더해서 '산악회'로 인한 건강의 혜택을 받았고, 많은 벗을 사귈 수 있게 됨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의 모임도 사랑의 콩깍지가 씌인 회원들로 가득했으면 하고 소원해 봅니다.
저도 일하다보면 (돌이켜 보면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인데) '욱'해서 주워담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죠...
다행히 상대방이 수궁하셔서 별일은 없었는데...
산악회내에서도 남과의 비교를 하다보면, 불의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있는 그대로를 봐 주고, 이해해 주는 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봐 주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