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2020.03.26 23:37

    코로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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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단상

     

    고국에서 오랫동안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했던 것이 이곳 생활에 밑 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어려운 시험문제를 받아든 학생처럼 서둘러 열심히 풀었다.

    종종 명석지 않아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고마운 인과관계로 만난 분들로 인해 시원섭섭한 가게를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59세의 일이니 벌써 13년이 되었고, 그때는 젊은 미국 친구들의 꿈이 55세에 은퇴를 선망하던 시절이니 내 나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남들은 곤히 자는 시간에 와인 한 잔 들고 집사람에게 '내 청춘을 돌리 둬!'란 투정을 더 부리지 않아 좋았다.

    물론 집사람도 두 아이 기르느라 바쁘게 움직였으니 뒤늦게 쉼표를 갖는 생활이 되어 다행이다.

     

    집에 있는 것이 간혹 무료한 때도 있지만, 내 생각대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옛날과 비교해 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잘하던 일도 멍석을 깔아 주면 안 한다'라고 코로나로 인해 꼼짝 말고 들어앉아 있어야 할 나이라고 명령을 내리니 갇혀 있는 듯 기분이 씁쓸하다.

    방송에서는 뉴스에 대부분을 코로나에 관한 이야기로 발생 국가와 확진자 그리고 사망자를 발표하니 심기가 불편해진다.

    더욱이 비어있는 상점 선반을 비추어 줄 때는 약삭빠르지 않고 무심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나에게도 은근히 걱정된다.

    고국에서 소식을 준 친구에게 그쪽 사정은 어떠냐고 물으니 마스크를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다.

    몇십 년 동안 미사일을 쏘아댄 김정일과 김정은의 학습효과(?)로 인해 사재기가 없다는 표현은 대한민국이 더 선진국 같다.

     

    그저 하루에도 종종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안정을 해 보지만 수양이 턱없이 부족해서 '코골이 낮잠'이 되어 돌아온다.

    찬장을 열어 보니 나야말로 식품과 화장지가 필요하다. 8시에 오픈하는 시니어 아워가 있는 코스코를 가려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7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백여 명 넘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많은 사람이 마스크 쓰고 고무장갑도 낀 모습이다.

    이른 아침에 오랫동안 줄을 서 있어 의기소침해진 '시니어'에게 한 여성이 손을 흔들며 'Good morning everybody!'를 외치며 지나간다.

    쉽지 않은 행동에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한 부류의 고객들이 쇼핑을 마치고 나온 후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유심히 보니 거의 다 배급받은 화장지 한 개씩과 물, 정도이다.

    근심, 걱정이 있으면 화장실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유독 미국인들에게 많은가 보다.

    나는 나올 때 한 구루마에 가뜩 실은 달걀, 상치, 커피, 라면, 화장지, 물 등을 실은 늦깎이 손님이 되어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출입구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화장지는 리펀드가 안 됩니다.* 

    도대체 화장지가 뭐길래~~ ^^

    • profile
      안나 2020.03.27 08:56
      활동이 없으니 조용할수밖에 없는데도 틈만나면 들어오게 됩니다.
      혹시나 누구에게나 공감가는 무심님의 에세이가 올라와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면서...
      오늘따라 긴~~내용의 글이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심님.^^.
      회원님들께서도 잘 지내시다가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때 반갑게 만날수 있기를 기다리겠습니다.
    • ?
      musim 2020.03.27 16:27

      안나님,

       

      이제는 마음속에서나 그려보아야 하는 '토요산행' 입니다.

      시에라 산악회에 회원으로 함께 어울리던 즐거운 시절이 뒤늦게 그리워집니다.

      짧은 세월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돈독한 만남의 추억이 스멀스멀 생각나기 때문이겠지요.

      어쩌다 혹독한 병이 돌아서 사람과의 관계마저도 끊어지고 서로의 안위와 연민의 정을 나누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지금 막 둑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과 함께 산책길을 다녀왔습니다.

      휘어진 산책길은 종종 협소한 곳을 지나가야 하는데 마주치는 사람과 간격에도 주의하게 되더군요.

      토요가족과 만남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누구든 겪어보지 못한 이 시련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봄을 시샘하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늘 건강과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p.s: '데빗'님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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