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와인 한 잔
적은 양의 한두 잔의 와인을 즐기는 나에게는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밤에는 한잔 걸쳐야 하루의 일과를 마친 보람이 있다.
이런 날 그냥 누우면 하루 마감에 아쉬움이 느껴져서 잠들기가 수월치 않다. 술이란 마시는 사람에 따라서 약도 되고 독도 되지만,
적당한 음주는 '스트레스'받는 생활에 편안한 마음을 얻을 수도 있다.
은퇴한 생활이라도 잡다한 생각은 늘 주위를 맴돌아서 잠들기 전에 한잔의 '레드와인'은 편안한 마음과 생각을 갖게 한다.
주위에는 건강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늘어간다. 나 또한 세월을 휘감아 떠나야만 하는 마지막 역까지 건강한 삶을 희망하면서도
두려운 기분에 마시는 한 잔은 이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술로 인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 강요하지 말고 지나치게 마시지도 말고 즐겁게 각자의 건강에 맞추어 마시면 얼마나 좋은가.
나의 술과의 인연은 열 살 남짓부터 어린 시절 심부름으로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친구분이 오시는 날은 어김없이 주전자 들고 동네 대폿집을 드나들었다.
그 심부름도 이력이 날 즈음에 동네 모퉁이에서 누가 볼까 봐 마음 졸이며 두, 세모금을 마셔보았다.
씁쓰름하면서도 들척지근한 맛은 머리가 핑 돌면서 가는 길이 난생처음 땅이 꺼지는 듯했다.
감추어질 수 없는 두근두근하는 가슴과 큰 죄를 지은 머슴처럼 얼른 사랑채 미닫이문을 열어 주전자 들이밀고 줄행랑을 쳤다.
그 당시의 집 구조는 안방에서 올라가는 '다락' 이란 공간이 있었는데 슬며시 그곳에서 한잠 자고 나면 붉어진 얼굴과 두근거리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형제 중에 맏이기 때문에 여러 형제분이 모여서 제사를 자주 지내게 된다.
자연히 어르신들 밑에서 함께하는 술좌석에도 끼어들게 되었고 술에 대한 예절도 배우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떤 이는 술좌석에서 소란을 피우고 혹은 엉엉 우는 모습도 드물게 보게 되지만 그 모든 것이 과음한 탓이다.
적당히 건강에 맞추어 마시면 되고 대화를 즐기며 우정을 나누면 된다.
주룩주룩 비 내리는 날 밤에 뒷골목 포장마차에서 고기 굽는 구수한 냄새와 희뿌연 연기를 어깨로 넘기면서 목으로 넘어가는
싸한 소주와 함께하던 친구들이 생각나는 밤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운치 있는 밤에 와인 잔을 앞에 놓고 지나간 젊은 날을 회상하니 그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