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salami'를 판다는 것은 내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댄'은 '오케이'하더니 지갑에서 3불을 꺼내 주며 thanks mom! 도 잊지 않는다. 아! 이게 미국인가?
그날 밤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광경을 본 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앞으로 미국 문화와의 혼동 속에서 살아가야 함을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두 분께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자꾸 어제의 생각이 떠오른다.
'댄'의 집안 환경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백인 중산층가정에서 두 형제가 올바른 교육을 받으며 자란 것이 분명 하지만
동양에서 온 나에게는 그 문화 충격이 '태산'만큼 커 보였다.
세월이 흘러 늦여름이 되어간다.
어느 날인가 '댄'은 부모님이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와인너리' 그리고 아들도 볼 겸 해서 주말에 오신단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앞서는데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듯 여느 때와 같은 생활을 하며 주말을 맞았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저녁이 되어 손 수 몰고 오신 'camp car'에서 간이침대를 가져와서 patio에다 펼쳐 놓았다.
나는 혹시나 눈 뜨면 별이 보이는 바깥에서 잠을 자려 하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늘 높게 드리운 은하수를 찾아보며 하루를 마감하시는 듯싶었다.
나의 그때 심정은 방을 하나 내드리고 거실에서 '댄'이 자거나 내가 자는 것이 옳은 일인데...
아! 참 쌍 X의 세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을 목격했다.
이 친구는 부모에게 자기의 방을 권유하지도 않고 ‘굿 나잇’하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이게 세상에 될 법한 일인가?
事親以孝(사친이효 : 어버이를 섬기되 효로써 한다)는 눈곱만큼도 없는 행동에 ‘따귀’라도 한 대 갈겨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그날 밤을 거의 뜬눈으로 보내고 동이 틀 무렵인 새벽에 한국에서 가지고 온 '신앙촌' 털 담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곤히 슬리핑백에서 잠들고 있던 댄의 어머니에게 덮어드렸다. 아뿔싸! 마침 옆에 있던 댄의 아버지가 깜짝 놀라신다.
그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친절(?)에 당황하신 것이다.
여하튼 나는 조금은 죄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행동을 했으니 마음이 편했다.
옆방의 그 녀석은 잠만 쿨쿨 잘 자고 있으니 그 부모에 그 자식이다.
낮이 되어 모두 같이 나가서 운치 있는 곳에서 식사하고 부모님은 다음 행선지로 떠나셨다.
그때의 나는 몸과 생각은 한국인인데 이곳에서 겪어가는 것으로 인해 나의 정체성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던 것을 미국 문화에 접목해가는 중에 많은 고민을 했으나 그로 인해 내 생각과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어렸을 적 한국에서의 할머니의 특별한 보살핌, 미국으로 이주하여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신 댄의 어머니는 소중한 만남이었다.
두 분으로 인해 훗날 내게 생긴 자식에게 두 문화의 좋은 점과 사랑, 인정 그리고 좋은 가치관을 갖도록 도와주었음을 보람있게 생각한다.
끝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나의 할머니와 Dan의 어머니!
“고맙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십시오.
젊은 시절의 무심님과 친구분을 마치 옆에서 보는듯 흥미진진 읽다가
마지막에 등장한 '하늘나라'에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슬프네요ㅠㅠ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