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이곳에 와서 한국분이 운영하는 7-11에서 첫 직장(?)을 잡고,
'금전 등록기'누르는 법을 어렵사리 익히고서 임시로 시간제 사장(社長)이 되었다.
그곳은 교통량이 많은 사거리에 자리 잡고 있어서 장사는 꽤 되는 편이었다.
그저 정확히 찍어대고 '땡큐'만 하면 되는 일과, 더욱이 혼자서 하는 일이 좋았다.
단지 손님이 말 걸지 말고 그냥 나가주면 고마운데 가끔 뭐라고 하면 환장할 일이다.
한국에서의 정장 차림으로 조금은 진지한 표정에 익숙해 있던 나는 이곳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표정과 생활이 과연 좋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의 일이다.
그렇게 이민생활 2개월이 지나갈 때이다.
하루는 초저녁에 젊은 남자 손님 둘이 계산을 하면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말소리와 표정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밖에는 조금 전에 나간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연인 한 쌍이 자기 차 옆에서 떠나지 않고,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연인은 물건 사고 나가면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그들의 인상이 험했는지 싶다.
이 녀석들이 잠시 동안 무어라 하더니 나가 버렸다. 아이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밖에 있는 젊은 연인들은 그 녀석들이 갈 때까지 이곳을 지켜보다, 그들이 떠난 후에야 가게 안에 들어와서
모든 것이 괜찮으냐고 하며 잠시 머물더니 떠났다.
그 당시 나는 '땡큐' 소리 이외에는 '벙어리' 이기에 달리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미국이 400년이 못 되는 역사의 정신적 지주는 바로 청교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연인들은 자유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온 102명의 Mayflower의 후손들인 Good Samaritan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몇십 년 전의 그 일은 세상의 소풍을 마칠 때까지 그들을 기억하고, 나의 영혼이 다할 때까지 간직하게 될 것이다.
이름 모르는 친구여!
“고맙습니다.”
맞습니다. 지나온 추억은 아름다운 것일수록 잊을수가 없지요~
무심니임~ 함께 공유한 지나온 추억들을 우리 어찌 잊을수가 있나요~
젊을때는 꿈을 먹고 살지만,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 하자나요~
아마도 우리들의 나이 수준은... 꿈과 추억을 모두 공유하는 연령대 맞지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