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2017.11.10 04:19

    고국 방문의 단상

    조회 수 81 추천 수 0 댓글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고국 방문의 단상



    삼 년 만에 다시 찾은 고국은 늘 그랬듯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같은 언어와 모습으로 소통할 수 있고 낯익은 시절이 마음에 포근히 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에 삼 주 남짓 되는 짧은 기간에 많은 친구를 만나며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의 의미를 각인시키는 서로의 만남이었다. 내가 머문 숙소 부근에 마치 하늘에 가까이 있는 듯한 ‘하늘공원’으로 가는 271개의 계단을 오르며 펼쳐진 가을의 청취는 짙은 추억으로 물 들어 있다. 가을과 어우러진 코스모스, 해바라기, 상쾌한 아침 바람에 한들거리는 억새의 향연이 감미롭고 평화스럽다. 간간이 세워진 정자에 오르니 무릉도원에 온 듯하며 저 멀리 보이는 한강과 남산 타워를 바라보는 마음은 ‘서울의 찬가’를 부를 만큼 황홀했다.



    친구와 내가 자란 도심 속의 보잘것없었던 하천인 청계천은 세계인이 주목받는 관광의 명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잘 어우러진 수초와 잉어 떼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가을 햇볕에 따스함을 더해준다. 불안한 한반도 정세와 함께 우리가 여기서 염려하는 한국민의 불안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평화롭고 바쁜 일상의 모습뿐 이었다.



    틈을 내어 삼박 사흘간의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사십여 년 전 이곳에 올 때까지 서울의 사대문 안에서만 생활하던 나에게는 원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양구’ 민통선 내에 있는 ‘두타연’을 들러보는 특별한 일정이었다. 50년 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2004년에 풀린 관광명소이며 붉게 물든 단풍이 가을의 정서를 흠뻑 물들인다. DMZ 북방 경계선 바로 밑, 험한 산악지역인 이곳은 다섯 개의 능선을 따라 여러 차례 내어주고, 탈환하던 격전지라 한다. 격렬했던 전쟁의 안내판을 보면서 나 또한 6.25전쟁으로 세 돌이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었던 슬픔에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양구'라면 최고의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을 수가 있는 박수근 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다. 전시된 박수근의 첫사랑이자 배필로 맞이한 빛바랜 청혼의 편지를 읽으며 천재 화가의 애틋한 사랑을 느꼈다. 한국을 빛낼 수 있는 천재 화가의 젊은 나이의 요절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충북 제천에서 시작한 자동차 여행을 끝내고 서울에 돌아와 보니 새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며칠 남아 있지 않다.

    엊그제만 같았던 환영해 준 친구와 벌써 작별의 정을 나누려 점심에 만나서 청계천을 따라 두, 세 시간 걸었다. 피곤했지만, 헤어지기에는 이른 나이(?)인지라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다 식사 후 밤늦게 헤어졌다. 동창생이란 이렇게 그저 옆에만 있어도 푸근한 감정을 갖기에 좋은가보다.



    그 후 사흘 동안 집 앞에 있는 '마트'에 몇 번 가게 되었다. 갈 적마다 젊은이의 두 손 모은 공손한 인사를 받으며 입장하는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혹시 그것이 한국사회에 만연한 갑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만약 어린이가 엄마 손 잡고 마트에 갈 적마다 그 모습을 보고 성장한다면 그로 인해 ‘갑과 을’의 관계가 어려서부터 마음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손님은 왕’이라는 차원을 넘어 고쳐야만 하는 관습이 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짧게만 느껴졌던 고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하늘 위에서 그동안 도움을 준 방성민, 김창배 후배와 여러 동창, 그리고 마주했던 분들에게도 와인 한 잔을 들면서 무조건 건강을 위하여…!

    ‘고맙습니다.’


     

    • profile
      안나 2017.11.10 07:37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향에서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꺼내보시며 사색에 잠겨 계셨을 무심님이 그려집니다.
      잘 다녀오셨으니 이제 또 익숙한 이곳에서 산뜻하고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시기 바랍니다.
      따끈따끈한 고향소식 반갑게 잘 읽었습니다.
      피로가 회복되시면 곧 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profile
      아싸 2017.11.10 22:41
      오래 간만에 무심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차분해 집니다.
      마눌은 내년에 한국 다녀 온다고, 몇달전부터 광고 하고 여행가방까지 사 놓앗건만, 저는 강건너 불구경입니다.
      전쟁 불감증(?)의 한국인 이라지만, 저도 주변 일들에 불감증이 많이 생겼습니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그리운 사람들 하고 수다도 떨고 글도 읽고 하는 한가한 시간들이 많이 그리워 집니다.
      12월 초에는 뵐 수 있겠지요?
    • profile
      산. 2017.11.10 22:59
      모처럼만에 다녀오신 고국에서 오래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포도 풀고 더불어 여행까지
      다니며 좋은 시간을 보내시고 무탈하게 돌아오셔서 반갑습니다.
      조만간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09 느낌 링크 걸린 글 서쪽길 2024.12.26 99
    708 제안 의도(Intention)에 대하여 7 Tom 2024.12.22 215
    707 인사 안녕들 하셨습니까? 4 자연 2024.12.22 163
    706 제안 글은 인격이다 12 Tom 2024.12.22 226
    705 감동 한강님의 시노래 - 햇빛이면 등등 콜로 2024.12.17 261
    704 정보 "반 고흐" 서울 전시회 file 호담 2024.12.01 142
    703 정보 Laugavegur trail – 총 35 MI 을 소개합니다 1 늦은비 2024.11.25 156
    702 알림 아이폰 iOS 18 업데이트 후에 우리 산악회 웹사이트가 까맣게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4 호담 2024.11.24 247
    701 정보 드라마 "정년이" file 호담 2024.11.24 114
    700 알림 대상포진 예방주사 4 file 호담 2024.11.19 133
    699 이야기 유투브 출연했어요. 구독, 좋아요, 덧글 부탁드려요^^ 2 미셀 2024.11.15 189
    698 정보 김연자 아모르파티!! (이번주 토요일 저녁 8시 Cache Creek) file 호담 2024.11.07 205
    697 정보 안드로이드 폰에서도 전자 드라이브 라이센스가 가능합니다 3 file 노아 2024.10.21 165
    696 알림 고우영 만화책을 공유합니다. 애플 2024.10.21 117
    695 정보 아이폰 Messages via Satellite 됩니다!! 4 file 호담 2024.09.28 227
    694 정보 Driver's License in your Wallet App in iPhone 2 file 호담 2024.09.27 153
    693 감동 우리 산악회는 건강합니다 1 file 호담 2024.09.23 266
    692 정보 Starlink Mini file 호담 2024.08.22 214
    691 알림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1 3 file 호담 2024.08.08 198
    690 인사 감사 인사 드립니다. 5 2024.08.01 24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6 Next
    /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