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방길과 쉼터를 차지한 여우
화창한 날씨에 한동안 쉬었던 집 부근의 둑길을 걸으려 나섰다. 물 한 병만 갖고 가는 편안한 복장과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걸을 수 있는
둑방길의 걸음이 가볍다.오늘은 둑길 위에 지나다니는 자전거도 드물고 훈훈한 여름 바람만이 몸과 하천을 휘감고 다닌다.
멀리 보이는 '가요디' 힐의 능선에는 바다에서 몰려온 구름이 주변의 산야를 가린다.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걷는 혼자만의 산책은 여러 사람과의 산행과는 사뭇 다르다.
말 상대가 있을 때와 달리 내 생각을 온전히 마음대로 재단하고 옳고 그름을 반성하는 시간도 갖게 된다. 또한, 시간의 제약 없이 자유로워지는
것도 좋으며 혼자 걷는다는 것은 호젓한 생각을 마음속에 각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하천에 흐르든 검푸른 물은 메말랐고 바닥을 들어낸 곳에는 작은 모래섬들이 널려있다. 물속에 함께 있어야 할 이끼 낀 수초와 탁한 빛의 자국이 스산하고 쓸쓸해 보인다.
다람쥐들은 술래잡기에 연신 둑을 지탱하는 돌 사이로 드나들고, 이름 모를 파란색에 빨간 머리를 가진 새는 넋 놓은 자세로 나뭇가지 위에서
쉬어간다.
전에는 둑길 하천에 찬거리를 구하러 나온 청둥오리, 백로들의 물 짓 놀이와 왼편으로는 넓은 공터에 피어난 유채꽃들과 어우러진 주위환경을
무척 좋아했었는데, 자금은 중장비와 망치 소리가 자연환경을 파헤치며 새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환경 오염과 자연의 상태를 훼손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가 있으면 하고 바라며 걷는 걸음이 어느새 종착역에 다다랐다.
여기는 테이블이 두 개 있고 옆에는 큰 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워 풍경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게 해준다. 이곳에 오면 의자에 누어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뭇잎 사이로 뭉게구름을 보며 낮잠을 즐기며 쉬어 가는 곳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왔을 때는 고양이로 착각했던 여우 새끼가 나타났다. 그때는 처음 만난 어린 여우가 귀여워서 주머니에 과자라도 있으면
던져주고 싶었다. 오늘은 어느 정도 자라기도 하고 그동안 사람들과 친숙해졌는지 가까이 오려고 한다.
새끼가 있으면 주위에 어미도 있을 것이고 갑자기 불안해진다. 슬금슬금 뒤돌아보며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백세시대란 말이 희망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편히 쉬어가는 소풍도 여유롭게 하지 못하는 생활은 인간들의 자연환경 훼손에 있다.
결국에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먹이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온 여우는 나의 소중한 둑방길의 쉼터를 차지 하게 되었다.
어느날 갈비뼈가 앙상한 여우 한마리가 눈치를 보면서 울동네 도로를 걷고 있었어요
불쌍하지만 어떻게 도와줄수가 없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