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딸아, 밝은 딸아!
오늘따라 '소파'에서 일어서며 물을 들이키다 벽에 걸린 ‘가운’ 입은 졸업사진 속에 딸과 눈이 마주쳤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미소에 인색하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을 많은 세월 속에 알고 있다.
오늘따라 예쁜 딸의 웃는 모습이 나의 마음속에서 여운을 남긴다. 학교 마치고 집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출가(?)한 지 이년쯤 되어간다.
어려서부터 아비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생활을 하였기에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유교의 가부장적인 삶의 마지막 세대인 외골수 아빠로부터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민을 왔다고 부모의 고생만 강조하는 분위기와 바깥세상에 친구와의 삶의 비교는 자신의 정체성에 많은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생소한 곳에서 너희를 돌보니 공부에만 매진하라고 다그쳤던 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 가기에는 이민 생활에 어쩔 수 없던 것일까?
무엇이 옳고 그릇 된 것이었는지 자신이 없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처럼 때로는 바위에 부딪칠 수도 있었겠다 싶은 마음으로 나의 미숙했던 점을 위안 삼는다.
아빠에게 애교가 넘치고 친근히 대하는 딸들도 많건만 우리 아이는 여성스러운 얼굴과 행동은 되는데
아빠와 딸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난 친근감은 없었다. 나름대로 부끄럽지만, 나는 남들과 전혀 다르게 아이들을 키워왔고
그 점은 다른 부모에게 자랑할 수 없는 나만의 뿌듯함으로 남아있다.
왜냐고 한다면, 그저 벌어먹기 힘든 세상에 같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생활이었다면 변명 이면서도 근접한 사실이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 속에서 만족을 찾으려 하는 내 마음에 자주 소식을 준다고 해도 조용하고 싶은 마음에 물결을 일으킬 뿐이다.
좋게 생각 한다면 집 떠난 지 이 년 동안에 내게 전화한 것은 너, 댓 번(생일과 어버이날)도 안 된다. 성격이 그래서일까?
다른 애들은 떨어져 살면 어미와도 자주 통화 한다고 한다. 이 녀석은 심히 아팠어도 회복한 다음에, 전화 걸 일이 있을 때나
언젠가 많이 아팠다고 이야기하는 독종(?)이다. 내 자식이지만 연구대상인지, 대견한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그래도 그런 아이 좋다고 남자 친구가 생겼으니 다행이다.
그 녀석과 함께 두어 번 식사하였는데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성품은 좋게 느껴졌다.
딸은 늘 키가 큰 사람을 선호하였는데 저보다 조금 크니 제 눈의 안경이란 말이 맞는다.
그래도 우리 자식도 넘보기 어려운 대학에서 레슬링 챔피언으로 국가 대표를 바라보던 때에 부상으로 접었다.
요즈음은 직장 끝난 후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코치로 못다 한 꿈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꿈으로는 두 녀석 중에 하나라도 결혼을 했으면 하는데 ... 남들 부모의 걱정이 내게 닥쳐온 지도 오래되었다.
아들 녀석은 결혼 생각은 않고 가끔 친구와 골프나 치며 스포츠만 좋아한다.
제 녀석이 운동하면 모르겠는데 ‘텔레비전’ 시청만 하니 딱하다. 축구, 농구, 테니스, 골프, 야구...
그래도 진정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성품 가진 사람은 드물기에 위안으로 삼는다.
아비를 닮았으면 연애에 무지하지는 않았을 텐데, ㅎㅎ 한심한 녀석이지만 제 밥벌이는 하니 다행이다.
차일피일 나이는 삼십 중반이 되어오니 이를 어쩌랴!
딸아 딸아, 밝은 딸아!
너라도 빨리 가거라.
딸이 없는 저는 딸바보 아빠들의 그 묘한 표정들을 부러워 하지만 때론 무자식의 혹은 싱글들의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봅니다.
인간들은 아니지... 저는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것 맞나봅니다.
잠시 글을 읽으며 설거지를 쌓아놓고 상념에 잠기네요...